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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시 오감도에 대한..

부산인터넷뉴스 2007. 4. 14. 02:17
이상의 詩 오감도에 대한 小考 /교안 준비 강봉환 교수


1937년 이상과 김유정은 이땅에서 나란히 사라졌다. 김유정은 3월29일 스물아홉의 나이에, 이상은 20일 뒤인 4월17일 스물일곱에 죽었다.
둘다 폐결핵이 원인이었고 요절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혼을 이해했던 절친한 문우였다.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구인회]에서 단짝으로 지냈던 이들이 죽자 문단에서는 그해 5월15일 부민관에서 합동추도식을 올렸고, 평론가 백철은 {파시즘의 도래를 앞둔 문학의 죽음}이라고 애도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는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소설 [날개]에서 번쩍이는 기지와 독설을 남기고 찬란하게 파산한 이상은 지금도 문학청년들이 한번씩 거쳐가는 통로이자 극복의 목표다.
이상과 함께 구인회 멤버였던 시인 김기림은 {이상의 죽음으로 우리문학이 50년 후퇴했다}고 말했다.
김윤식 교수는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문제로 고민하는 문인들은 우리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근대]를 파악했고,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동시에 초극하려 했던 이상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문학이라는 [지방성]에 가두지 말고 세계문학의 반열에서 이상을 자리매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상은 본명이 김해경으로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건축 기사가 되었다. 31년에 시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고, 서양화 [초상화]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상했다. 34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연작시 [오감도], 36년에 잡지 조광에 소설 [날개]를 발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때 다방 [제비] [69] 등을 경영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불온사상 혐의로 체포됐다.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지병인 결핵으로 결국 동경에서 사망했다. <[이상-김유정 60주기] 박제가 된 두 천재를 아십니까 / 조선일보에서 인용>

이 두 문인 중에 詩의 천재로 인정받고 있는 이상에 대하여, 그것도 그의 작품 <오감도烏瞰圖>에 대한 詩 감상을 정리하려 한다.

<오감도烏瞰圖>

<시 제1호>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 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4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5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6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7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8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9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0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1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십삼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시 제2호>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니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시 제3호>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고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하니까싸움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고싶거든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싸움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싸움이나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시(詩) 제 6호>

앵무 ※ 2필
2필
※ 앵무는포유류에속하느니라.
내가2필을아는것은내가2필을알지못하는것이니라.물론나는희망할것이니라.
앵무 2필
"이소저는신사이상의부인이냐""그렇다"
나는거기서앵무가노한것을보았느니라.나는부끄러워서얼굴이붉어졌었겠느니라.
앵무 2필
2필
물론나는추방당하였느니라.추방당할것까지도없이자퇴하였느니라.나의체구는중추를상실하고또상당히창랑하여그랬든지나는미미하게체읍하였느니라.
"저기가저기지""나""나의-아-너와나"
"나"
sCANDAL이라는것은무엇이냐."너""너구나"
"너지""너다""아니다너로구나"나는함뿍젖어서그래서수류처럼도망하였느니라.물론그것은아아는사람혹은보는사람은없었지만그러나과연그럴는지그것조차그럴는지.


<시(詩) 제 7호>

구원적거(久遠謫居)의지(地)의일지(一枝)·일지에피는현화(顯花)·특이한4월의화초·30륜(輪)·30륜에전후되는양측의명경(明鏡)·맹아(萌芽)와같이희희(戱戱)하는지평(地平)을향하여금시금시낙백(落魄)하는만월·청한의기(氣)가운데만신창이의만월이의형당하여혼륜(渾淪)하는·적거(謫居)의지를관류하는일봉가신(一封家信)·나는근근히차대(遮戴)하였더라·몽몽한월아(月芽)·정일을개엄하는대기권의요원·거대한곤비(困憊)가운데의일년4월의공동(空洞)·반산전도(槃散顚倒)하는성좌와성좌의천열(千裂)된사호동(死胡同)을포도하는거대한풍설·강매·혈홍으로염색된암광채임리한망해·나는탑배하는독사와같이지하에식수되어다시는기동할수없었더라·천량이올때까지


<시(詩) 제 8호>

제1부시험 수술대 1
수은도말평면경 1
기압 2배의평균기압
온도 개무
위선마취된정면으로부터입체와입체를위한입체가구비된전부를평면경에영상시킴.평면경에수은을현재와반대측면에도말이전함.(광선침입방지에주의하여)서서히마치를해독함.일축철필과일장백지를지급함.(시험담임인은피시험인과포옹함을절대기피할것)순차수술실로부터시험인을해방함.익일.평면경의종축을통과하여평면경을2편에절단함.수은도말2회. ETC 아직그만족한결과를수득치못하였음.
제2부시험 직립한평면경 1 조수 수명

야외의진공을선택함.위선마취된상지의첨단을경면에부착시킴.평면경의수은을박락함.평면경을후퇴시킴.(이때영상된상지는반드시초자를무사통과하겠다는것으로가설함)상지의종단까지.다음수은도말.(재래면에)이순간공전과자전으로부터그진공을강차시킴.완전히2개의상지를접수하기까지.익일.초자를전진시킴.연하여수은주를재래면에도말함.(상지의처분)(혹은멸형)기타.수은도말면의변경과전진후퇴의중복등. ETC 이하불상.

환자의 용태에 관한 문제



진단 0:1 26.10.1931 以上 책임의사 이상

전후좌우를제(除)하는유일의흔적(痕跡)에있어서
익은불서목불대도(翼殷不逝目不大覩)
반왜소형의신의안전(眼前)에아전낙상(我前落傷)한고사(故事)를유(有)함

장부(臟腑) 라는것은침수된축사(畜舍)와구별될수있을란가


<시 제9호(총구銃口)>

매일같이 열풍이 불더니 드디어 내 허리에 큼직한 손이 와 닿는다. 황홀한 지문 골짜기로 내 땀내가 스며드자마자 쏘아라. 쏘으리로다. 나는 내 소화기관에 묵직한 총신을 느끼고 내 다물은 입에 매끈매끈한 총구를 느낀다. 그러더니 나는 총 쏘으드키 눈을 감으며 한 방 총탄 대신에 나는 참 나의 입으로 무엇을 내어배앝었더냐.


<시 제10호>

찢어진 벽지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그것은 유계(幽界)에 낙역(낙繹)되는 비밀한 통화구다. 어느 날 거울 가운데의 수염에 죽어가는 나비를 본다. 날개 축 처어진 나비는 입김에 어리는 가난한 이슬을 먹는다. 통화구를 손바닥으로 꼭 막으면서 내가 죽으면 앉았다 일어서드키 나비도 날라가리라. 이런 말이 결코 밖으로 새어나가지는 않게 한다.


<시 제11호>

그 사기컵은 내 해골과 흡사하다. 내가 그 컵을 손으로 꼭 쥐었을 때 내 팔에서는 난데없는 팔 하나가 접목처럼 돋히더니 그 팔에 달린 손은 그 사기컵을 번쩍 들어 마룻바닥에 메어부딪는다. 내 팔은 그 사기컵을 사수하고 있으니 산산이 깨어진 것은 그럼 그 사기컵과 흡사한 내 해골이다. 가지났던 팔은 배암과 같이 내 팔로 기어들기 전에 내 팔이 혹 움직였던들 홍수를 막은 백지는 찢어졌으리라. 그러나 내 팔은 여전히 그 사기컵을 사수한다.


<시 제12호>

때묻은 빨래 조각이 한 뭉덩이 공중으로 날라 떨어진다. 그것은 흰 비둘기의 떼다. 이 손바닥만한 한 조각 하늘 저편에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왔다는 선전이다. 한 무더기 비둘기의 떼가 깃에 묻은 때를 씻는다. 이 손바닥만한 하늘 이편에 방망이로 흰 비둘기의 떼를 때려 죽이는 불결한 전쟁이 시작된다. 공기에 숯검정이가 지저분하게 묻으면 흰 비둘기의 떼는 또 한번 손바닥만한 하늘 저편으로 날아간다.


<시 제13호>

내 팔이 면도칼을 든 채로 끊어져 떨어졌다. 자세히 보면 무엇에 몹시 위협당하는 것처럼 새파랗다. 이렇게 하여 읽어 버린 내 두 개 팔을 나는 촉(燭)대 세움으로 내 방안에 장식하여 놓았다. 팔은 죽어서도 오히려 나에게 겁을 내이는 것만 같다. 나는 이런 얇다란 예의를 화초분보다도 사랑스레 여긴다.


<시 제14호>

고성 앞 풀밭이 있고 풀밭 위에 나는 내 모자를 벗어 놓았다. 성 위에서 나는 내 기억에 꽤 무거운 돌을 매어달아서는 내 힘과 거리껏 팔매질쳤다. 포물선을 역행하는 역사의 슬픈 울음소리. 문득 성 밑 내 모자 곁에 한 사람의 걸인이 장승과 같이 서 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걸인은 성 밑에서 오히려 내 위에 있다. 혹은 종합된 역사의 망령인가. 공중을 향하여 놓인 내 모자의 깊이는 절박한 하늘을 부른다. 별안간 걸인은 표표한 풍채를 허리 굽혀 한 개의 돌을 내 모자 속에 치뜨려 넣는다. 나는 벌써 기절하였다. 심장이 두개골 속으로 옮겨가는 지도가 보인다. 싸늘한 손이 내 이마에 닿는다. 내 이마에는 싸늘한 속자국이 낙인되어 언제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시 제15호>

1
나는 거울 없는 실내에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역시 외출중이다. 나는 지금 거울 속의 나를 무서워하며 떨고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어디 가서 나를 어떻게 하려는 음모를 하는 중일까.
2
죄를 품고 식은 침상에서 잤다. 확실한 내 꿈에 나는 결석하였고 의족을 담은 군용 장화가 내 꿈의 백지를 더렵혀 놓았다.
3
나는 거울 있는 실내로 몰래 들어간다. 나를 거울에서 해방하려고.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침울한 얼굴로 동시에 꼭 들어온다. 거울 속의 나는 내게 미안한 뜻을 전한다. 내가 그 때문에 영어되어 있드키 그도 나 때문에 영어되어 떨고 있다.
4
내가 결석한 나의 꿈. 내 위조가 등장하지 않는 내 거울. 무능이라도 좋은 나의 고독의 갈망자다. 나는 드디어 거울 속의 나에게 자살을 권유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그에게 시야도 없는 들창을 가리키었다. 그 들창은 자살만을 위한 들창이다. 그러나 내가 자살하지 아니하면 그가 자살할 수 없음을 그는 네게 가리친다. 거울 속의 나는 불사조에 가깝다.
5
내 왼편 가슴 심장의 위치를 방탄 금속으로 엄폐하고 나는 거울 속의 내 왼편 가슴을 겨누어 권총을 발사하였다. 탄환은 그의 왼편 가슴을 관통하였으나 그의 심장은 바른편에 있다.
6
모형 심장에서 붉은 잉크가 엎질러졌다. 내가 지각한 내 꿈에서 나는 극형을 받았다. 내 꿈을 지배하는 자는 내가 아니다. 악수할 수조차 없는 두 사람을 봉쇄한 거대한 죄가 있다.

위에 인용한 시는 이상李箱의 작품, <오감도> 詩14편이다.
유감스럽게도 이상의 시, <오감도>는 시의 제15호로 마감이 되어 있으면서도 제5호는 발견하지 못하여 이 지면에 옮기지를 못했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1937년 동경에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요절한 시인이다.
출생을 살펴 보면, 그의 할아버지 김병복의 둘째 아들인 그의 아버지는 별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인지 큰아버지 밑에서 함께 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큰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없어서 이상은 할아버지에게 있어서는 장손으로 큰아버지에게는 양자가 된 아들로서 친 아버지에게 역시 아들로서의 귀한, 어쩌면 매우 처신하기 어려운 “아들”의 위치에 있는 존재적 경험을 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환경에 있던 이상은 3세 때에 자기 친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친부모는 분가를 하게되어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의 밑에서 자라게 되는데, 그에게 형식상 어머니 역할을 하게 된 큰어머니에게는 데리고 들어온 자식이 있어 그 사이에서 이상은 알게 모르게 “심리적 박해”을 겪어야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하면 “심리학상”으로 이상은 친부모와 원치 않는 이별을 통해서 얻게 된 심리적 분리불안分離不安(seperation anxiety)을 경험하게 되고, 동시에 친부모와의 관계에서 다수의 경쟁자인 할아버지, 큰아버지, 아버지라는 여러가지 얼굴의 부성적父性的 대상 사이에서 동일시 현상(identification phenomenon)의 혼돈(confusion)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거기에다 덧붙여서 큰어머니가 데리고 들어온 형제와의 보이지 않는 갈등에 의해 형제충돌(sibling rivalry)을 경험하므로서 정신적 외상外傷을 입었을 가능성이 컸으리라고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심리학적 장애 요인들은 이상의 詩에 투영되어 여러가지 심리적 방어기제(psychological defense mechanism)로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이 詩가 발표되던 1934년경에는 세계적으로 초현실주의(超現實主義;sur-realism;1920년대에 일어난 예술운동의 한 경향으로 인간을 이성理性의 속박에서 해방하고 초현실적이고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운동)과 반이성주의적反理性主義的 예술운동의 하나인 다다이즘(dadaism;일체의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전통적인 예술 형식을 파괴하는 운동으로 후에 초현실주의에 흡수됨)이 풍미하던 시절이었고, 한국의 몇 안되는 동경 유학파 지식인들 중의 하나인 이상에게도 그러한 사조思潮의 흐름이 작품에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 이상의 작품을 폄하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그 당시 풍미하던 예술적인 흐름을 모방한 “하나의 詩的 실험實驗”이라고 보며, 하나의 치기稚氣로 해석하려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모방적 실험이든, 아니면 그 자신이 창안해낸 실험 정신의 극치이든 그것은 우리 문학사에 커다란 도전적인 시적 실험으로 평가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기를 보면 한국의 지성인으로서 어찌보면 마음 편안하게 나라 잃은 젊은이가 용기있게 항거할 수도 없는 가슴 속의 수치심, 또는 마음 속에 담고 있던 막연한 울분이나, 자신이 자라난 가족환경 속에서 얻어진 무의식 속에 침전되어 있던 정신적인 상처가 복합적으로 그의 詩에 하나의 투사(投射;projection)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詩<오감도>의 제1호에 있는 詩는 많은 사람들의 해석적 도전과 해체를 위한 연구 대상이 되었던 대표적인 詩이다.
"모든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은 기교를 낳고, 그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고 외쳤다는 이상李箱.
그는 여기에서 절망을 노래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제목에서부터 논란이 일었다.
사전에 보면 “조감도鳥瞰圖”라는 말이 있을 뿐, “오감도烏瞰圖”라는 말은 없다. 여기에서 이 시가 실린 조선일보의 활자 선택에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이상의 의도적인 제목이라는 주장이 서로 엇갈린다.
이상의 의도적인 제목이라는 해석은 이 시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그려내기 위한 장치로서 시의 제목에 “음울하고 불길한 새”의 상징인 “까마귀(烏)”를 도입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즉 불길하고 갇혀버린 탈출구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을 까마귀의 눈으로 내려다 보며 쓴 형상의 글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여기서 먼저 의문점이 생기는 것은 '13'이라는 숫자이다.
이것의 의미는 (1)당시 우리 나라의 도(道)가 13도였다는 것으로 식민지 조국을 상징한다는 것, (2)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예수와 12제자를 상징한다는 것, (3)무수(無數)의 상징이라는 것, (4) “13의 금요일”처럼 가장 불길한 숫자로서의 상징이라는 것, (5)일종의 국외적(局外的) 성격을 띤 사물을 상징이라는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 작품에서의 의미는 분명하지는 않으나 “오감도”의 까마귀의 불길함과 연관지어 볼 때, 이 13이라는 숫자도 불길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러면 각 시의 구절을 살펴보기로 한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가서는 다시 앞의 말을 뒤집어 놓는다.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결국 “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로 시작하여 13번의 반복 끝에 매달아 놓은 이 절망의 장치는 피 할 수 없는 숙명적인 절망(=막다른 골목)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무섭다고 그리오”라는 말로 시작하여 “무서운 것”으로부터 도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같은 의미 전달이 13번이나 되풀이 되면서 처음 언술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느끼는 속도감이 점점 더 빠르게 진행되어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가 극도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음을 주목해 보면 더욱 뚜렷해 진다.
그 13이라는 상징적인 여러가지 해석 중 몇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이상의 무의식적 인식 속에 자리하고 있던 그 절망의 인식을 그는 이렇게 불길한 언어와 불길한 숫자와 연결하면서 절망적인 상황—“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라고 절망적으로 포기하는 모습--을 피할 수 없이 포기하는 하나의 과정(=뚫린 골목이라도 적당)으로 인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에 그가 동경에 머무르다가 불온 사상혐의로 체포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지병인 결핵으로 그곳에서 죽었다는 것만으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노출되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근거가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나약한 한 지식인으로서 식민통치를 하던 일본이라는 존재를 “무서운 존재”로 설정하여 우리나라 전국토의 제1도(제주도)부터 제13도(함경북도)까지 모두가 무섭다고 말하며 도망치는 모습을 상징하였다고 본다면 그 또한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드러내놓고 저항할 수 없는 존재들—아버지,큰아버지, 할아버지, 또는 큰어머니와 같은 가족이라는 굴레를 포함하여 일본과 같은 압제자들—로부터 도피 하려는 의식의 강한 표출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작품 속에는 피하고 싶어하는--“자유로움을 향한 탈출”에 대한 강한 희망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의 편이 아니었다고 포기하면서 그는 이렇게 되나 저렇게 되나 마찬가지라고 포기하고 있는 자세로, 마음 속으로만 탈출을 꿈꾸었을 뿐 실제로는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면서 그의 삶은 서서히 무너져 갔다는 것이 옳은 지적일 것이다.
그의 유년시절 겪었던 분리불안은 그에게 양가치(兩價値;ambivalance)라는 심리적 갈등상태를 야기시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 속의 갈등을 투사(投射:projecton)시키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어린시절의 정신적 피해가 꼭 그 어린시절에 정신적으로 자신을 꼼짝도 못하게 했던 가족에 대한 도피 또는 절망감으로부터의 탈출로만 노출되고 있다고는 볼 수가 없을 것이며, 그 경험들이 다른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반응하여 그를 옭죄는 사회적 굴레(=속박)들에 대해서도 그 같은 형태로 작용하고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난한 삶이나 민중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회적 고통을 상정하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경제적으로는 크게 어려운 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러한 뒷받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가 “다방”을 경영하여 실패를 했다던가 하는 일은 있었지만, 그 당시 한국인의 전체적인 평균적 생활 수준으로 볼 때, 그러한 방황을 감당하면서도 마지막에 동경으로 건너가는 일까지 감행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 시대의 특권층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이었으므로 그의 삶이 정신적으로는 비참하였을지 모르지만, 요즘의 말로 말하면 정신적 사치 속에서 싹튼 삶에 대한 존재론적인 자유로움의 추구를 획득하지 못한 절망과 고뇌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터이다.
어찌 되었건 이상의 이 <오감도>는 개인적, 정신적인 사치라는 비난 보다는 우리나라 詩문학 발전에 기념비적인 “실험적 문제”를 제기시켜 놓았다는 데에 이견이 없을 듯 하다.
그의 첫째 여인으로 이야기 되는 금봉이와의 동거에서도 드러난바 있거니와 그것이 그의 소설 “날개”로 나타났다는 데에 이론이 없는 것을 보면, 그가 어린 시절에 겪은 심리적 갈등 상황은 어른이 되어서도 지울 수 없는 큰 멍에로서 작용한 것 같다.
그것은 누구라도 어릴 적의 여러가지 경험이나 사건 속에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정서적 상처의 영향을 받게 되는 경우와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詩 제2호에서는 자기 친아버지, 할아버지, 큰아버지를 동일시하는데 따르는 정신적 혼돈(=또는 상동증:streotype)을 “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라고 표현함으로써 심리적 방어기제인 투사를 통해서 거꾸로 묘사한 것으로 이해 된다. 여기에서도 그 반복은 속도감을 가지고 나타나며, 그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그를 억압하는 형식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즉, 자신이 인정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경험이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활동하다가 그 영향을 받아 현실에서는 그와는 그것과 정 반대의 것으로 의식함으로써 자아평정自我平靜을 얻으려는 심리적 상황이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증상은 때로 피해망상환자에게 나타나는 일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詩 제3호에서도 역시 “싸움하는 사람”과 “싸움하지 않는 사람”을 반복적으로 투사시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양가치(ambivalence)를 노출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상 시인이 시의 형식으로 “띄어쓰기가 없는 형식”을 선택하고 있는 점을 주의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시 속에서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동일가치로 내용을 혼돈시키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또한 어느 쪽으로도 편들지 못하는 꼼짝할 수 없음의 속박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글의 형태면에서 글자가 꽉 막혀 움직일 수 없음(=갇힘)의 인식이 마치 절망적임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詩 형식은 <오감도>에서 특징적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詩 제8에서는 매우 난해한 실험을 추구한다.
그 속에 들어있는 글자의 의미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형식이나 배열로 판단하여야 할 기괴奇怪한 형식을 드러내고 있는 이 詩는 <환자의 용태를 나타내는 문제>라는 설명을 달고 있으나 정상적인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의식의 전면에 나타나는 모습은 표시하지 않고, 실제로는 숫자를 거꾸로 배열하여 의식의 반대편 만을 투사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는 의식의 감추어진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가로 세로로 대칭으로 배열시켰다는 것은 상동증의 하나로 인식될 수 있는 징후를 발견하게 한다. 이것 역시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분열증의 한 표현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가 있다.
이렇게 각 호의 시 속에 자신의 내면에 갇힌 자아를 투영하여 스스로 무의식적 병증을 나타내면서 그는 스스로 자신의 병증을 진단한다.
마지막에 “장부(臟腑)라는것은침수된축사(畜舍)와구별될수있을란가”라는 표현으로 그의 내면이 모두 상傷하여 오물처럼 썩어 있음을 드러내어 절망감을 표현한다.

그 이외에도 그는 제9호(총구)에서는 자살충동의 내면과 그것을 이행하지 못하는 실체 사이를 표현하는 절망감을, 제10호(나비)에서는 나비의 죽음을 통하여 절망감이 가득한 언사를 쏟아내고 있다.

또 제11호~제13호에서는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Dali;초현실주의의 창시자)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은--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지만--문법적으로도 틀린 표현을 사용하며 “해골”과 “빨래조각” “면도칼”등을 동원하여 기묘한 모습으로 해체적이고도 분열적인 환상적 상상을 그려낸다.
이것이 정신분열증을 나타내는 극도의 혼란이라고 지적하는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이상은 이 <오감도>에서도 “자살에의 유혹”을 그려내고 있다.
그것은 그가 어렸을 적에 친부모로부터 받을 수 없었던 사랑에의 보상심리(compansation)나,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needs to be accepted)이라는 정신작용의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된다.

제15호의 거울 속에서 특히 그는 존재하고 있는 두개의 자아에 대한 확인을 시작한다. 그 속에 보이는 자아는 그를 닮은 또 다른 자아일 터이다. 그는 “거울 속의 나는 역시 외출중이다”라고 말한다. 이 역시 그의 부재를 표현하고 있으나 그것도 자신이 아무런 결정도 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부재不在를 의미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확실한 내 꿈에 나는 결석하였고”라고 말하는데 이것도 역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 다음에 “나를 거울에서 해방하려고”하고 있으나 오히려 그는 그 곳에 갇히는 모습이 된다.
그리고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에게 자살을 할 것을 권유한다. “내가 자살하지 아니하면 그가 자살할 수 없음을 그는 내게 가리친다”. 그러나 그것은 무위無爲로 끝난다.
다시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향하여 총을 쏜다. 그러나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탄환은 그의 왼편 가슴을 관통하였으나 그의 심장은 바른편에 있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실체와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분리된 자아의 그 시도가 터무니 없는 것이었음을, 실패를 자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지각한 내 꿈에서 나는 극형을 받았다”고 자신에게 실패의 준엄한 판정을 내리면서 유폐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자신을 노출시킨다.

많은 비평가들과 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시인들이 이 이상李箱의 <오감도> 읽기를 시도하여 왔다. 그의 시를 초현실주의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험적 시로 보는 사람도 있고, 자동기술법에 의한 심리적 실험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시 읽기가 상당히 많은 부분까지 깊숙이 파헤쳐서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불안정과 그의 절망을 통하여 현대인의 절망을 드러내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그는 일반적인 시 형식인 산문적 구조로 시를 썼고, 자유시 형식으로 쓴 것도 몇편—“명경”, “무제”, “거울”, “회한의 장” 등과 같은 시들—이 있으나 그것도 깊이 들여다 보면 산문적 틀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발표한 이상李箱의 시詩들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아니던 우리 시詩에 하나의 독특한 실험으로 빛나는 이정표를 세워 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에 詩를 쓰는 사람들 중에도 끊임없이 실험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시적 실험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실험에는 적어도 어떤 통일적인 자신의 의도가 확고한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을 경우에 그 실험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흔히 가벼움이나 건들거리는 모방으로, 또 자기 자신도 모르는 표현으로 자기를 감추며 애매성이나 난삽성으로 포장하려는 실험이나 과도한 언어의 비틀기나 목조르기와 같은 기초적인 문법적 소양도 갖추지 못하고, 문법을 뛰어넘으려는 실험은 그 자체로만 끝나고 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시 속에는—이상의 시 조차도 그러했으므로--진정성과 절실함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 하나의 전범典範으로 이상李箱을 꼽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