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 "욕정을 일으켜" 표현 쓰지 말자
2007년 11월 1일 (목) 12:55 세계일보
성폭력 사건 "욕정을 일으켜" 표현 쓰지 말자
“혼자 걸어가는 여대생인 피해자를 발견하고 욕정을 일으켜 (중략) …치료일수 불상의 음부 외상을 입게 하고, (중략) 피해자를 살해한 후에도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 사체를 오욕하고…(중략)” (○○지방법원 2006.7.27 선고 2006고합58)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사건의 판결문 등에 나오는 ‘욕정을 일으켜’ ‘욕정을 못 이겨’등의 문구를 삭제하라는 요청서를 전국 사법기관에 지난 9월28일 발송했으며, 그 결과 대구지방검찰청이 이 문구를 피하기로 했다는 회신을 보내왔다고 1일 밝혔다.
앞서 민우회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장, 판결문에 사용되는 ‘욕정을 일으켜’, ‘욕정을 못 이겨’ 라는 문구를 삭제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문구는 △성폭력을 폭력이 아닌 통제 불가능한 성욕의 분출구로 설명하고, △남성이라면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실수로 인식시킬 수 있으며, △‘욕정’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는 가정은 피해자가 가해자의 욕정을 일으킬 만한 어떤 행동을 했다는 피해자유발론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민우회는 이같은 문구가 법정문서에서 관례적으로 사용돼 언론 보도에까지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사회 통념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우회는 또 “외국 판례의 경우에도 성폭력 범죄에 대해 사실적 정황을 설명할 뿐, ‘욕정을 일으켜’ 라는 등의 문구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런 문구가 범행의 고의성이나 계획성을 배제시키고 판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경찰대 표창원 교수 역시 “성폭력 가해에 대해서 ‘욕정을 일으켜, 못 이겨’라고 기술 하는 것은 가치중립적인 상황설명이 아닌, 가해자가 자신의 가해를 변명할 때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법정 용어로 부적절하다”며 “외국에서는 성범죄 사건 서류에 가해자의 범죄동기와 원인을 멋대로 추단하여 제시하는 ‘욕정’이라는 용어는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를 등에 해당하는 객관적인 사실인 범행양태가 기술될 뿐”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인터넷뉴스팀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