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아내와 거짓말

부산인터넷뉴스 2007. 12. 5. 18:03

 

아내와 거짓말


엊그제 새벽 매일하듯이 리모컨 쥔 손을 부지런히 놀리다 화면상단의 “아내와 거짓말”이라는 자막에 지루하리만치 많은 광고에도 불구하고 제목의 유혹을 떨치지 못해 일본영화인 아내와 거짓말을 보게 되었다.


눈가와 입가에 약간의 상처가 있는 한눈에 봐도 꽤 지적이고 의지가 강해보이는 한 여자가 거리를 해매다 가정폭력상담이란 간판을 보고 안으로 들어가며 영화는 시작됐다.

창구마다 쭉 앉아 상담하는 여자들..   더 안으로 들어간 여자가 마주친 무표정한 여인..  그냥 밖으로 나와 공원벤치에 앉아 한숨을 길게 쉴 즈음, 예의 상담소에서 마주쳤던 한쪽다리를 절고 있는 그 여인이 옆에 와 앉는다.


“그래도 아직은 견딜만하겠군” 이라며 말문을 연 그 여인은 “나는 한쪽귀가 들리지 않아요. 남편에게 맞아서..  이 다리는 망치로 맞아서이래요.” 그렇다면 이혼을 하시지그랬어요? 하니 “그래도 살기로 했어요.” “그러다 죽어요.” 하자 그렇다면 그것도 운명이겠죠. 그래도 희망이 생겼어요. 남편이 치매 증세를 보이고 있거든요. 그땐..    “나는 포기를 했지만 좋은 곳을 소개해 줄께요.” 하며 손에다 전화번호를 적어준다.

  

12살 차이나는 아내와 남편은 3년차의 부부이다.

남편은 아내가 집에서 살림만 하고 아이를 낳았으면 하지만 아내는 사회생활 하는 것이 더 좋다. 그런 아내에게 불만이 쌓여가던 남편은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한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아내의 앨범을 쓰레기통에 갖다버리고, 신용카드 정지까지.. 나중엔 손찌검으로 이어진다.


매 맞는 아내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차갑고 냉정하다. 장인의 전화를 받은 남편은 다정하게 아내를 데리고 노래방에 간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흥겹게 머리를 흔들며 장단까지 맞춰주지만, 갑자지 네가 장인에게 전화했지 라며 때리기 시작한다. 남편이 화장실간 사이 종업원에게 경찰을 불러 달라 도움을 요청했지만, 영업에 지장이 있어서 사장님께 여쭤봐야 한다는..  겁에 질린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도망쳐서 경찰서로 간다. 하지만 경찰서에서는 오히려 훈계만 듣는다.

“설사 진짜 고소해서남편이 범죄자가 되었다고 칩시다. 그게 진짜 아내분이 원하시는 것이에요. 아닐 겁니다.”

 

그러다 남편은 2차적 폭력으로 아내의 알몸까지 찍어 아내를 도망치지 못하게 한다.

진단서를 끊으러간 병원에서의 여의사조차 “진짜 가정폭력은 여자가 살아남지 못해요. 내장이 터지고 눈알이 빠져버립니다. 이건 사랑스러워서 그냥 ..”  ”그렇다면 칼로 눈알을 쑤시는 것도 사랑스러워서 입니까? 진단서나 끊어주세요?“  매 맞는 아내들이 어디에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꼭꼭 숨어버리는 이유가 사회 전반에 도사리고 있는 차가운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뭘 잘못했기에 맞았겠지, 맞을 짖을 했을 거야..  라는 점점 심해지는 남편의 폭력을 견딜 수 없었던 아내는 62장 째의 이혼서류를 찢어버리는 남편의 폭력을 향해 사회와 남편에게 대항하기로 한다. <실시간 가정폭력 중개 사이트>를 만들어 인터넷으로 전송한다.


전문가와 상담하는 장면에서 나온 예전에 가정폭력 가해자였던 상담원의
“당신은 강아지에게 재주를 가르쳤는데 거기서 머리만 쓰다듬고 멈출 것 같나요? 아니면 계속 다른 것을 시킬 것 같나요?” 이 말이 폭력가해자의 정신 상태를 말해주는 전부이다.


구속된 남편에게 “당신은 쓰레기야” 라는 상담원의 말에 “그러면 당신은?”하는 남편에게 “나도 쓰레기야 나도 옛날엔 아내를 폭행하는 쓰레기였지만, 아내는 자살하고 말았지, 그렇지만 당신아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  이제 이혼에 동의해줘”   “안돼, 아내는 말은 하지 않지만 내 아이를 임신 했어 이혼만은 못해” 당신은 그 아이까지 때릴 거잖아 당신이 맞았던 것처럼 ..“   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만다..  


나는 내방식대로 나의 아버지가 가르쳐줬던 것처럼 가정을 지키기기 위함이라던 남편은 “당신어머니가 맞을 때 웃으면서 맞더냐”는 한마디에 학습된 폭력을 인정하고 절망한다. 불룩한 임신한 배를 안고 밝아진 모습으로 거리를 걷고 있는 아내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아 ~  그래..   아내와 거짓말 ... 

지금 우리주위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남편에게 매 맞으며 사는 아내들이 얼마나 많을까...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같아 씁쓸하고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남편에게 살해당한 아내들의 신발을 모아놓은 그림이 스치고 목이마르다.  입안이 텁텁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