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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심리적 상태에서...

부산인터넷뉴스 2007. 4. 14. 03:00
[【교안배성근교수】] 1. 어떤 심리적 상태에서 회상하여 들려준다 -김용락「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1. 어떤 심리적 상태에서 회상하여 들려준다 -김용락「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그때 그 일이나 풍경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왜?
- 그 일이나 풍경이 그 자체로 생에 대한 어떤 이해를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어떤 특별한 계기 없이도 과거의 어떤 일이나 풍경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그것에 뭔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에 대한 근원적 답을 주는 체험 같은, 그래서 영원의 풍경처럼 느껴지는 그런 뭔가가 있기 때문에 내 일상을 깨고 떠오르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다른 때는 떠오르지 않다가 지금 떠올랐다면, 지금 그것을 회상할 수밖에 없는 심리상태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심리감정의 상태가 그때 그 일이나 풍경을 더욱 진하게 회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때의 일이나 풍경은 그 자체로 현재 나의 어떤 욕망을 표현하는 무엇이 됩니다. 그러니 아무거나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품는 상황풍경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회상하는 것이 곧 감정세계의 표현일 수 있는 것!
다음 시를 보겠습니다.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 김용락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아니, 기적 소리가 듣고 싶다
가을비에 젖어 다소 처량하게
비극적 음색으로 나를 때리는
그 새벽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
방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있던
단풍이 비에 젖은 채로 이마에 달라붙는
시골 역전 싸구려 여인숙에서
낡은 카시미론 이불 밑에 발을 파묻고
밤새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마시던
20대의 어느날 바로 그날 밤
양철 지붕을 쉬지 않고 두들기던 바람
아, 그 바람소리와 빗줄기를 다시 안아보고 싶다
인생에 대하여, 혹은 문학에 대하여
내용조차 불분명하던
거대 담론으로 불을 밝히기라도 할 양이면
다음날의 태양은 얼마나 찬란하게
우리를 축복하던가
그날은 가고 기적을 울리며 낯선 곳을 향해
이미 떠난 기차처럼 청춘은 가고
낯선 플랫폼에 덩그러니 선 나무처럼
빈 들판에 혼자 서서
아아 나는 오늘밤 슬픈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아니, 기적 소리가 듣고 싶다"고 말합니다. "가을비에 젖어 다소 처량하게/ 비극적 음색으로 나를 때리는/ 그 새벽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육중한 쇠의 소리, 가을비가 비극적 분위기를 자아내더라도 일정한 괘도를 따라 온몸으로 가던 기차이고, 그들만이 낼 수 있는 기적소리가 듣고 싶은 것입니다. 왜? 비록 그것이 비극을 예정하고 있더라도 방향성의 존재가 그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은 사라져간 거대담론(혁명과 같은)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뿔뿔이 흩어져 무기력하게 살아서도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기차의 기적소리는 그냥 기적소리가 아니라 생의 심리적 기원을 살려내는 소리입니다. 그 기억조차 사라지면 우리는 영원한 난파선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 기적소리와 함께 했던 그날, "20대의 어느날 바로 그날 밤"이 영원의 순간처럼 지금의 나를 깨치고 살아오는 것입니다. 회상하는 것입니다. 비록 치밀하지는 못했지만, 때로는 낭만적이기까지 했지만, 온몸으로 굴러갔던 그 시절 그 장면이 생에서의 기적소리처럼 찾아든 것입니다. 비록 "그날은 가고 기적을 울리며 낯선 곳을 향해/ 이미 떠난 기차처럼 청춘은 가고/ 낯선 플랫폼에 덩그러니 선 나무처럼/ 빈 들판에 혼자 서서" 나는 있지만 그 기적소리가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은 아닐지라도 생이 생이고자 하던 때였기 때문에 말입니다. 단지 '옛날이 좋았어'가 아니라 현재를 자리매김하는 마치 좌표축과 같은 추억에 대한 회상입니다.

- 글/ 오철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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