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안배성근교수】] 김용락 소시집 | |
![]() 김용락 김용락-민중 김용락-겨울 산에서 김용락-어머니 김용락-무 꽃 김용락-봄 김용락-산 2 김용락-대구의 페놀 수돗물 * 민중 - 김용락 최근 민중의 힘으로 청와대 가까이 간 한 운동 명망가가 이제는 민중이란 말이 싫어졌다고 해서 화제이다 이해가 가는 일이다 나는 그이처럼 까놓고 말할 용기는 없지만 요즘 들어서 세수할 때 찬물보다 따뜻한 물이 좋다 음식을 먹을 때도 편안하고 품위있는 장소가 좋다 소주나 맥주보다는 뒤끝 없는 양주가 당기고 장여관보다는 모텔 수준이라도 호텔 쪽으로 발길이 간다 지난 한시절 풍찬노숙하면서 시장 귀퉁이에서 라면이라도 제때 먹으면 감사하고 공사장 계단이라도 쫓기지 않고 몸 누일 자리만 있으면 황송했는 데 어느덧 나도 서서히 바뀌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흔이 채 못되고 시간강사가 이런데 쉰이 넘고 일국의 장관이 민중이 싫다는 건 충분히 이해 가는 일이다 황홀한 욕망이 넘치는 일이다. * 겨울산에서 - 김용락 겨울산은 엄하다 차운 별빛 하나조차도 제자리를 찾아 빛난다 그 자리를 찾기 위해 나는 어둠속에서 작은 손전등 하나 없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얼어붙은 겨울산에 기어올랐다 좌 우 편향 버리고 쓸모없는 것들 죄다 버린 벗은 몸으로 더욱 당당한 겨울 정상에서 나도 이제 수사를 버린다 * 어머니 - 김용락 서민아파트의 날품 밤 깍는 어머니들 시커먼 아궁이 속 같은 콘크리트 출입구가 기약 없는 생활처럼 너무 어둡다 목에 풀칠하고 자식 위하는 일이라면 밤 껍데기뿐만 아니라 자기 껍데기마저 사정없이 벗겨 내려는 듯이 조금의 틈도 없이 두 손을 놀리는 그 사이로 언뜻 파랗게 곧추선 칼 끝이 하늘을 찌른다 그 주위에는 갈 곳 없는 아이들 몇이서 코딱지를 떼며 어슬렁거리고 도시의 찬바람 속에서 더욱 가난하게 드러나는 어머니들의 노동 그 속에는 시퍼렇게 다져놓고 속으로만 앓아온 당신들의 눈먼 반평생이 들어앉아 있다 비로소 그 속에 나도 있고 혁명도 있지만 오늘은 생명의 싹이 더 크게 보인다 * 무꽃 - 김용락 봄날에 녹평 사무실에서 건너다 뵈는 뒷산비알의 노란 무꽃을 보면서 세상일에 너무 쉽게 화낸 자신을 뉘우친다 지켜보는 이 없이도 꽃들은 저리도 타오르는데 채마밭 같은 고향에서 튕겨 나와 도시 외곽을 전전하면서 누군가를 섣불리 사랑하고 또 성급히 아파한 마음의 골짜기엔 산새 소리가 남아 있다 * 봄 - 김용락 퍼붓는 진눈깨비 속에서 산수유나무가 등 같은 노란 꽃을 달았다 그것도 가시덤불 틈바구니에서 사람이 헛된 집착에 매달리면 눈이 멀어지는가보다 나는 피투성이 짐승처럼 꽃 주위를 서성인다 * 산 2 - 김용락 어둠속으로 산이 가라앉는다 비애의 저 산 적막함 한가운데에 내가 다시 무덤 하나로 묻힌다면 어둠을 털며 산은 떠오르리라 빨치산 * 대구의 페놀 수돗물 - 김용락 그날 그 도시에 사건이 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수돗물을 마신 시민들이 영문도 모르게 설사와 구토 피부병을 시작했고 임신중인 산모들이 태아를 유산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더 괴기 공포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그 도시에선 현실이었다 나찌는 2차 대전중에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페놀 주사를 포로들의 심장에다 직접 꽂아 보다 신속하게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그 페놀을 재벌 기업이 상수도 수원지에 쏟아부었고 시민들은 즉각 생수를 사먹고 차를 몰고 물을 떠 나르기 위해 인근 산속에서 법석을 떨었다 그건 중산층의 손쉬운 이기심이었다 생후 10개월짜리 갓난 딸애를 가진 염색공장 노동자 김이박 씨 생수 사먹을 여유가 없는 저임금의 노동자 물 뜨러 시외 나갈 승용차 한대 없는 김이박 씨 공단에서 퇴근해 월셋방에 돌아와 우유 탈 물을 못 구해 쩔쩔매는 아내를 부여안고 그는 울부짖었다 짐승처럼 “이젠 마시는 수돗물마저 계급적이어야 하나?” -=-=- *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 정과리/한국일보 시를 읽으면, 생각은 같아도 느낌은 얼마나 다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김용락의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창작과비평사간)는, 이런 명명이 가능하다면, '몰락 이후의 시'에 속한다. 몰락 이후란 80년대의 사회변혁의 열기에 불을 지폈던 이념의 몰락을 가리킨다. 홍두깨처럼 닥친 90년이후, '몰락 이후의 시'는 적지 않다. 이념의 몰락과 더불어 시의 음조도 한숨과 신음의 악몽 속으로 쫓겨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 한숨과 신음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가령, 얼마 전에 이 지면을 통해 다루었던 윤재철의 '생은 아름다울지라도'에는 억제된 피울음이 가득하다. 그 피울음은 몰락의 상황을 어느 다른 무엇으로도 해소하지 못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견디는 정직성으로부터 새어나온다. 시인은 다른 것은 모른다. 다만,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 끊임없이 피흘리는 꽃'임을 거듭 체현할 뿐이다. 그와 비교하면, 김용락의 시는 무엇이 특징인지 잘 드러난다. '기차 소리...'의 시들도 이념의 몰락을 뼈저리게 느낀다. '인간의 마음을 데워주던 따뜻한 이념의 별빛과 등불'은 이제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그 이념은 그의 시에서 여전히 불끈 치솟아 오른다. 윤재철에게 하나였던 이념(몰락)과 생은, 여기에서는 둘로 분화된다. 이념은 '봉화는 내 마음 속에 있었다'의 '봉화'처럼 마음의 충동으로, 생은 '피투성이 짐승/ 서성임/ 한때의 사내들 울음소리'의 짐승의 생으로 변질한다. 그의 시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갈라진 두 국면을 맞부딪쳐 스파크를 일으키는 것. '절정으로 타오르는 삶'과 '남루한'인생을 붙여서 산화의 꿈을 되새기는 것. 그의 시는 기이한 환각 속으로 접어든다. 희망과 절망이 엇갈리고, 전생과 후생이, 다시 말해, 몰락 이전과 몰락 이후가 한데로 뒤섞인다. '쓸모없는 것들 죄다 버린/ 벗은 몸으로 더욱 당당한 겨울 정상에서/ 나도 이제 수사를 버린다'에서와 같은 겸허와 '밴드가 끝나면 흩어질 뿐이다/ 그리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철저히 무명이니까/ 그녀가 바로 세상이니까'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기가 뒤엉킨다. 윤재철의 시가 죽음을 견디는 숙명주의자의 시라면, 김용락의 시는 변혁의 에네르기가 투하 장소를 찾으려고 법석이는 투쟁주의자의 시다. 그러니까, 느낌이 다르다면, 실은 세계관도 다른 것이다. 아주 다양한 전망, 아주 이질적인 태도들이 몰락 이후에도 들끊는다. 물론 나는 어떤 세계관이 더 올바른가를 따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운이 빠진 시대일수록 세계관들의 쟁론이 필요할 때임을 지적할 뿐이다.정과리 <문학평론가.충남대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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