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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 시인의 시...

부산인터넷뉴스 2007. 4. 14. 02:47
[【교안강봉환교수】] 신경림 시인의 시 훔쳐보기-"길" 이미지분석


신경림 시에 나타난 '길' 이미지 분석


1) 문학에서 '길'의 상징은 일반적으로 떠남과 돌아옴을 가능케 하는 공간 또는 모든 가치의 시작과 어떤 결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뿐만 아니라 '길'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의 의미를 넘어 인간의 출생에서 죽음까지 이르는 기간과 함께 그 속에서 겪는 모든 체험의 총체를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길'은 태어남과 떠남의 공간이며, 새로운 만남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오랜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귀향길이기도 하다. 또 '길'은 자연 공간을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 되게 하므로 인간적, 문화적 공간의 구분과 연결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문학상징사전>에서) 볼노프의 표현대로 '생의 공간적인 이중 운동'이라 할 수 있는 떠남과 돌아옴, 만남과 헤어짐, 삶과 죽음이 모두 '길'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때, '길'의 의미를 묻는 일은 곧 세상살이의 뜻을 천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길'은 인생의 내부에서는 삶의 이치·삶의 이법(理法)·삶의 수단을 상징하며 인생 자체나 나그네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2) 고향은 우리가 생명을 받고 태어난 곳인 동시에 세계와의 최초의 경험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일정 기간을 보내면서 인간과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감수성을 기르고 나와 이웃(세계)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넓은 세계로 여행하며 보다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나와 이웃(세계)을 새롭게 해석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길' 위를 여행하는 것, 즉 편력(quest)은 자아의 세계화, 세계의 자아화에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3) 범박하게 말해서 인간의 세상살이란 곧 '길'을 가는 행위라 해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삶을 다루는 문학에서 '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테면 술 취한 남편이 자신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물에 빠져죽자 애절한 노래를 남기고 남편의 뒤를 따른 [공무도하가]의 아내가 선택한 길, 남편의 늦은 귀가를 걱정하며 밝은 달빛 공간의 확산을 기원하는 [정읍사]의 아내의 길 등은 인간이 선택해야 할 다기(多岐)한 삶의 방법 가운데 하나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황(李滉)의 시조에 나타난 '길'은 학문의 정진과 수양에 대한 엄숙한 학자의 길을 제시하는 보기가 된다. 말하자면 이황의 시조는 학문의 연마와 정진에는 과거와 현재가 따로 없다는, 시간의 영속적 계승과 함께 동양 정신의 함축적 표현인 <도(道)>에 대한 타협 없는 신뢰로 볼 수 있다.

4) 현대시에서도 '길' 모티프는 다양하게 확산되고 그 의미 또한 심화되어 왔다. 비근한 예로 식민지 시대 쓰여진 많은 시가 '길'을 주요한 상징적 이미지로 활용하여 민족 수난의 비극과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목표를 추구한 것만으로도 그 사정이 넉넉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특히 만해 한용운의 시에서 '길' 이미지는 '님' 이미지와 함께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는 관건이 된다.

이 세상에는 길도 많기도 합니다.
산에는 돌길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뱃길이 있습니다. 공중에는 달과 별의 길이 있습니다.
강가에서 낚시질 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발자취를 내입니다. 들에서 나물 캐는 여자는 방초(芳草)를 밟습니다.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좇아갑니다. 의(義) 있는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하여 칼날을 밟습니다.
서산에 지는 해는 붉은 놀을 밟습니다.
봄 아침의 맑은 이슬은 꽃머리에서 미끄럼 탑니다.
그러나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의 품 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것은 만일 님의 품에 안기지 못하면 다른 길은 죽음의 길보다 험하고 괴로운 까닭입니다.
아아 나의 길은 누가 내었습니까.
아아 이 세상에는 님이 아니고는 나의 길을 내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의 길을 님이 내었으면 죽음의 길은 왜 내셨을까요.
-- 한용운, [나의 길] 전문

5) 위 시에는 물리적인 '길'과 정신적인 '길'이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시인이 추구하는 '길'은 정신적인 것이며, 그 중에서도 "님의 품에 안기는 길" 즉 자유와 진리를 추구하는 험난한 길이다. 그것은 죽음의 반대편에 있는 길인데, 왜냐하면 이 시의 화자는 자유와 진리를 포기한 채 살아가는 삶이란 "죽음의 길보다 험하고 괴로운 까닭"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살이란 말이나 생각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부단히 두 갈래 '길'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의 삶이란 언제나 '길'의 방향 선택과 관련되어 있으며,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나 종착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6) 개화·근대화와 함께 '길'은 서구 문물의 수용·전파 및 전통 문화의 변화라는 또다른 의미를 갖는다. 흔히 신작로(新作路)라 불리는 큰길은 개화와 함께 생겨난 길이면서 서구 문물의 직접적 수입 통로이면서 그 주변의 전통 문화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일제시대의 신작로는 군국주의 세력의 침탈을 상징하고, 60년대 산업화 이후의 '길' 역시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의 날카로운 길항과 대립, 가족의 이산과 이별, 탈향과 귀향의 상징적 의미를 띤다.

7) 신경림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끊임없이 '길'을 떠도는 시인이며 그런 점에서 신경림을 "기질적으로 타고난 방물장수"로 비유한 김정란의 지적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초기시는 여행하는 시적 자아를 통해 농민의 궁핍상, 피폐한 광산촌 이야기, 떠돌이 노동자 문제, 도시로 유입된 이농민의 후일담 등을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으며, 후기로 가면서 그것은 자아의 내면 성찰 또는 해한의 씻김굿으로 전이되기에 이른다.

(1) 개인적 울분의 토로와 탈향

8) {농무}를 비롯하여 70년대 쓰여진 신경림의 시는 대부분 산업화에 따른 농촌 공동체의 붕괴와 농민들의 탈향 욕망이 주조를 이룬다. 농민들은 장터에서나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서나 농사 걱정·빚 걱정을 하다가도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 아기를 뱄다더라."([겨울밤])거나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罷場]) 라며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한다. 그들이 서울을 그리워하는 가장 큰 원인은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農舞]) 때문이다. 그들은 "[농지세 1프로 감세] / 신문을 뒤적이는 / 가난한 우리의 웃음도 / 꽃처럼 밝아졌으면"([꽃 그늘]) 하는 소박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 소망조차도 "양곡 증산 13.4 프로에 / 칠십 리 밖엔 고속도로"([오늘])와 같이 농촌의 현실과는 현격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들이 허구헌 날 "묵내기 화투"를 치거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궁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농자천하지대본'이란 구호의 허구성을 일찍이 간파하고 있으며 국가의 농업정책이나 경제개발계획이 농민들의 실생활과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 것인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농사에 희망을 걸 수 없는 농민들, 농민을 우롱하는 농정(農政), 풍문으로 들려오는 도시의 풍요 등에 그들은 절망하면서 차츰 울분을 키운다. 하지만 그 울분은 지극히 개인적 감정이나 관념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어서 공감을 자아내기 힘들다. 가령 산업화 대열에서 소외된 농민들의 집단 시위를 다룬 것으로 보이는 다음 시편만 하더라도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관념적인가 하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녹슨 삽과 괭이를 들고 모였다.
달빛이 환한 가마니 창고 뒷수풀
뉘우치고 그리고 다시 맹세하다가
어깨를 끼어 보고 비로소 갈길을 안다
녹슨 삽과 괭이도 버렸다
읍내로 가는 자갈 깔린 샛길
빈 주먹과 뜨거운 숨결만 가지고 모였다
아우성과 노랫소리만 가지고 모였다
-- [갈 길] 전문

9) 신경림 시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으로 삶의 세목을 드러내는 능력을 들고 있지만, 위 시에서 그러한 특징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소설과 달리 시는 모호한 비유와 상징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되어 있긴 하지만, 위 시에서 "뉘우치고 그리고 다시 맹세하다가 / 어깨를 끼어 보고 비로소 갈 길을 안다"라는 구절의 의미를 해석하기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들이 애초에 "녹슨 삽과 괭이를 들고 모였다"가 어떤 이유에서 "녹슨 삽과 괭이도 버려"야 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단지 위 시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무형의 적에 대한 누를 길 없는 증오와 적의일 뿐이다.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가 1972년이란 문학외적 상황을 고려하여 유신독재에 대한 민중의 항거라고 해석하는 관점이 있을 수 있으나, 그런 경직된 사고는 신경림 시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신경림이 민중시 계보에서 뚜렷한 자기 세계를 구축한 시인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신경림이야말로 민중시의 구호(口號)·선동적 경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의 마지막 구절, "아우성과 노랫소리만 가지고 모였다"에서 우리는 이들의 행동이 조직적인 힘으로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화자 자신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농민들의 시위와 함성이 문제의 핵심을 겨냥하여 그 전복(顚覆)을 기도하는 것이라기보다 일시적 흥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화자의 예견 또는 민중과의 단절의식은, {농무}에 실린 거의 모든 시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① 그들의 함성을 듣는다
울부짖음을 듣는다
피맺힌 손톱으로
벽을 긁는 소리를 듣는다
누가 가난하고
억울한 자의 편인가
그것을 말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달려 가는 그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쓰러지고 엎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그 죽음을 덮는
무력한 사내들의 한숨
그 위에 쏟아지는 성난
채찍소리를 듣는다
노랫소리를 듣는다
-- [前夜] 전문

② 해만 설핏하면 아랫말 장정들이
소줏병을 들고 나를 찾아 왔다.
창문을 때리는 살구꽃 그림자에도
아내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
막소주 몇 잔에도 우리는 신바람이 나
방바닥을 구르고 마당을 돌았다.
그러다 마침내 우리는 조금씩
미치기 시작했다. 소리 내어 울고
킬킬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는
아내를 끌어내어 곱사춤을 추켰다.
참다 못해 아내가 아랫말로 도망을 치면
금새 내 목소리는 풀이 죽었다.
윤삼월인데도 늘 날이 궂어서
아내 찾는 내 목소리는 땅에 깔리고
나는 장정들을 뿌리치고 어느
먼 도회지로 떠날 것을 꿈꾸었다.
-- [失明] 전문

③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러워
내 모습은 초췌해 간다

뜯기운 수려선 연변
작은 면 소재지
추운 대목장

저 맵찬 바람 소리에도
독기어린 수근댐에도
나는 귀를 막았다

아는 사람을 찾아
왼종일 장거리를 돈다
-- [대목장] 전문

10) 위 시편들에 내재한 기본 정서는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차단 당한 민중들의 울분과 한숨, 울부짖음과 광기, 좌절과 도피의 초라한 욕망 같은 것들이다. 그들은 "피맺힌 손톱으로" 벽을 긁으며 몸부림치며 울부짖지만 정작 "누가 가난하고 / 억울한 자의 편인가"를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방향조차 정하지 못한 채 앞으로 달리기만 하는 무력한 무리〔群〕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함성이 성난 채찍소리나 노랫소리와 흡사할지라도 그 소리는 아무런 반향도 울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성난 몸짓과 소리를 옆에서 지켜보는 화자마저 그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기만 할 뿐, 함께 어깨동무를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해만 설핏하면 자신을 찾아오는 "장정들을 뿌리치고 어느 / 먼 도회지로 떠날 것"만 꿈꾸거나 "저 맵찬 바람소리에도 / 독기어린 수군댐에도" 귀를 막는 방외자일 따름이다. 요컨대 시집 {농무}에서 우리는 민중들의 실생활을 구성하는 삶의 세세한 물목과 정황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읽을 수 있지만, 그와 함께 "절망과 분노, 체념과 실의 같은 자포자기적 감정의 잔재를 극복하지 못한 측면"(염무웅)을 아울러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11) 신경림 초기시의 화자가 민중들과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고 마작도 하며 때로는 아편을 사러 밤눈길을 걸으면서도 그들과 동화되지 못하는 것을 그의 세속적 엘리티즘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떤 편이냐 하면 그(화자 또는 시인)는 고향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이 "내(시인)게 걸고 있는 터무니없는 기대를 말함으로써 나를 그들 틈에 끼워주지 않"아 철저히 외톨이로 지내야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자신의 학력이나 시인으로서의 사회적 신분 등을 내세워 그들과 거리를 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에게 보다 많은 것을 기대하고 그들 틈에 끼워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방관자 또는 어디에도 정신적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떠돌이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12) 그러나 이 떠돌이 생활은 내가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무렵에 내가 접촉하게 되었던 많은 사람들은 무두 내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그들은 몇 가지 서로 공통되는 점을 가지고 있었다. 한결같이 가난했고, 세상에 대해서 원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복수심과 체념으로 조금씩 비뚤어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전혀 그들 탓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로지 역사의 피해자요, 체제적 모순의 산물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받는 충격은 컸다.
내 속에서 들끓던 증오심은 어느 한쪽을 향해 집중되었다. 그러자 나는 차츰 정신적으로 안정되기 시작했다.(신경림, [내 시의 뒷 이야기],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 전예원, 1983.)

13) 떠돌이 생활을 하며 만난 사람들이 "한결같이 가난했고, 세상에 대해서 원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복수심과 체념으로 조금씩 비뚤어져 있"는 것을 보고 시인은 그 원인을 체제의 잘못으로 이해하고 충격을 받는다. 이러한 이해 방식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을 괴롭히던 정체불명의 증오심이 방향을 잡았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안정되기 시작했다는 고백적 진술은 다음에 전개되는 신경림의 시작(詩作)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늘과 땅만 바라고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가난하고 성격마저 비뚤어진 원인을 세상에 대한 원한과 증오심으로 파악한 그는, 민중의 대변자로 체제에 강력히 항거하는 것으로 시인으로서의 소명을 담당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대상을 향한 절망과 울분으로 정신적 방황을 거듭하며 "아무렇게나 살아갈 / 것인가 이 산읍에서"([山邑日誌])라고 자괴(自愧)하던 신경림은 서울로 올라와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민중들의 삶에 보다 밀착한 작품을 발표한다.

해가 지기 전에 산 일번지에는
바람이 찾아온다.
집집마다 지붕으로 덮은 루핑을 날리고
문을 바른 신문지를 찢고
불행한 사람들의 얼굴에
돌모래를 끼어얹는다.
해가 지면 산 일번지에는
청솔가지 타는 연기가 깔린다.
나라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내들은
서로 속이고 목을 조르고 마침내는
칼을 들고 피를 흘리는데
정거장을 향해 비탈길을 굴러가는
가난이 싫어진 아낙네의 치맛자락에
연기가 붙어 흐늘댄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산 일번지에는
통곡이 온다. 모두 함께
죽어버리자고 복어알을 구해 온
어버이는 술에 취해 뉘우치고
애비 없는 애기를 밴 처녀는
산벼랑을 찾아가 몸을 던진다.
그리하여 산 일번지에 밤이 오면
대밋벌을 거쳐 온 강바람은
뒷산에 와 부딪혀
모든 사람들의 울음이 되어 쏟아진다.
-- [산 1번지] 전문

14) '산 1번지'란 실제 행정 구역이 아니라 도시 변두리 산기슭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무허가 판자촌을 가리키는 편의적 용어이다. 일정한 생업을 갖지 못한 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도시 빈민들의 궁핍한 삶의 실상은 "집집마다 지붕을 덮은 루핑"·"문을 바른 신문지"·"죽어버리자고 복어알을 구해온 / 어버이" 같은 세목을 통해 현장감을 획득한다. '루핑'이란 두꺼운 종이에 콜탈로 코팅을 하여 물이 스며드는 것을 차단한 일종의 건축 자재를 말하는데, 그것은 60년대 도시 빈민의 상징적 징표라 할 만한 것이다. 행정 구역에도 없는 '산 1번지' 거주민들은 정부의 도시 계획에 따라 언제든지 철거당해 쫓겨날 처지에 있다는 점에서 나라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품을 수 없는 그들이 동병상련의 연대감으로 결속되기보다 "서로 속이고 목을 조르고 마침내는 / 칼을 들고 피를 흘리"는 원한과 증오의 삶을 살아간다. 거기에는 농촌 공동체 사회의 기본 덕목이었던 부조(扶助)와 상휼(相恤)의 아름다운 습속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대대로 물려온 가난에서 탈출하고자 상경한 이들이 제일 먼저 깨달은 생존 철학이 악착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해와 모략을 체질화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속악한 경쟁원리라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삶의 현장, 전통적 습속과 결별하고 적자생존의 법칙을 수납할 수밖에 없는 각박한 현실은 '바람'으로, 그런 현실적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통곡'으로 언표화된다.

15) {농무}에서 신경림은 고향 부근과 서울 변두리를 떠돌아다니면서 민중들의 실의와 좌절을 피부로 체감하면서 울분을 느낀다. 그러나 그 울분은 사회 구조의 근본적 모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 근거를 둔 것이라기보다 다분히 심정적 차원에 머문 것이어서 공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신경림 초기시의 문제점으로 "농촌현실에 대한 인식과 표현 면에서 피상성을 떨구어 버리지 못한 점"(조남현)이나 "외부 현실에 대한 내적인 갈등은 그 충족되고 고립된 세계 밖으로 밀려나버"(박혜경)릴 위험에 있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하지만 신경림 시의 가장 주요한 특징이랄 수 있는 "자기응시에 의해 정직함을 지키려는 자세"(염무웅)는 {농무}에서 다소 거친 모습으로 나타나다가 연륜이 쌓일수록 더욱 웅숭깊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농무}에서 시인이 떠돌아다닌 '길'이 민중들의 삶의 표피적인 부분과 관련된 것이라면 {새재} 이후의 '길'은 그 심층으로 진입해 들어가 그들을 보다 이해하는 도정이라 할 수 있을 만하다.

(2) 유랑과 표박 또는 역사적 현실과 전망의 심화

16) 강 하나 건너왔네 손도 몸도 내어주고
갯비린내 벽에 쩔은 엿도가집 행랑방
감나무 빈 가지 된서리에 떨면서
내 여자 몸 무거워 뒤채는 그믐밤
고개를 넘어섰네 뜻도 꿈도 내던지고
협궤차 삐걱대던 면소재지 그 새벽도
못박인 손바닥에 팔자로 접어뒀네
내 여자 숨이 차서 돌아눕는 시린 외풍
험한 산길 지나왔네 눈고 귀도 내버리고
엿기름 달이는 건넌방 큰 가마솥
빈내기 화투 소리 늦도록 시끄러운
내 여자 내 걱정에 피말리는 한자정
강 하나 더 건넜네 뜻도 꿈도 내던지고
험한 산길 또 지났네 눈도 귀도 내버리고
-- [밤길] 전문

16) 시집 {새재}에 실린 이 작품은 "뜻도 꿈도 내던지고" 도망치듯 고향을 떠난 한 부분의 신산스러운 삶의 역정을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유사한 내용과 반복적인 통사구조로 이루어진 이 시에서 고향을 떠난 부부의 사정은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지만, 그들이 현재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가는 절실하게 그려져 있다. 아내는 지금 몸이 무거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강을 건너고 고개를 넘어 "엿도가집 행랑방"에서 외풍을 견디며 몸을 뒤채고 있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가장으로서의 화자는 "내 여자 내 걱정에 피말리는 한자정"을 꼬박 견디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고향을 떠나왔지만 앞으로 지내야 할 일이 막막하기만 한 그에게는 미래에 대한 어떤 "뜻도 꿈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까지의 고단한 삶을 "못박인 손바닥에 팔자로 접어뒀네"라고 압축해 보여주는데, 이것은 그가 막노동자 또는 소작으로 반평생을 살아왔음을 뜻한다. 막노동으로 단련된 그의 정신과 육체는 그러나 아무런 꿈도 꿀 수 없는 절박한 현실에서 무참히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그가 가는 '길'은 환한 대낮의 신작로가 아니라 쫓기는 자들이 걸어야 하는 '밤길'이고 나라가 자랑하는 고속도로를 통해 도시로 진입하는 게 아니라 옛모습 그대로의 강과 고개, 또는 협궤 열차를 타고 초라하게 접근하는 '길'이다. 이 시는 아무 희망도 갖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난 유리민의 현실을 정확하게 포착하면서도 {농무}에서 보았던 시인의 감정이입은 상당히 절제되어 주목할 만하다.

17) 시인이 즐겨 찾는 곳은 장터·나루·남한강 상류 외진 읍내 또는 궁벽진 산촌·촌 정거장, 부둣가 등 산업화의 흐름에서 소외당한 지역이다. 당연하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처녀애들조차 "기운없이 걷고 있"([찔레꽃])고 "천막을 들치면 해수 앓는 늙은 아내"([바람])가 있으며 "떠도는 것은 숱한 원귀들뿐"([奧地日記])이다. 시골을 떠돌며 시인은 끊임없이 "산다는 일의 고통스러운 몸부림"([까치소리])을 목격하면서 "옛친구들의 얼굴을 보기가 / 두렵고 부끄러웠다"([故鄕에 와서])고 자괴하거나 "그 아내를 생각하면 나는 두려워진다 / 내 친구를 생각하면 나는 무서워진다"([다시 南漢江 상류에 와서])며 자신의 무능과 왜소함을 솔직히 고백한다. 이러한 고백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혹독한 자기성찰의 계기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협궤열차는 서서
기적만 울리고 좀체 떠나지 못한다

승객들은 철로에 나와 앉아
봄볕에 가난을 널어 쪼이지만
염전을 쓸고 오는
바닷바람은 아직 맵차다

산다는 것이 갈수록 부끄럽구나
분홍 커튼 친 술집 문을 열고
높은 구두를 신은 아가씨가
나그네를 구경하고 섰는 촌 정거장

추레한 몸을 끌고 차에서 내려서면
쓰러진 친구들의 이름처럼 갈라진
내 손등에도 몇 줄기의 피가 배인다

어차피 우리는 형제라고
아가씨야 너는 그렇게 말하는구나
가난과 설움을 함께 타고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형제라고

역 앞 장터 골목은 누렇게 녹이 슬고
덜컹대는 판장들이 허옇게 바랬는데

석탄 연기를 내뿜으며 헐떡이는
기차에 뛰어올라 숨을 몰아쉬면

나는 안다 많은 형제들의 피와 눈물이
내 등 뒤에서 이렇게 아우성이 되어
내 몸을 밀어대고 있는 것을
-- [君子에서] 전문

18) 협궤열차가 다니는 바닷가 조그만 마을에 들른 시인의 눈에 비친 그 고장 사람들의 삶의 실상은 "봄볕에 가난을 널어 쪼이"고 "역 앞 장터 골목은 누렇게 녹이 슬"어 추레하기만 하다. 그들은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을 만큼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산업화의 수확을 정당히 분배받지 못한 가난한 소외계층이라는 사실은 "기적만 울리고 좀체 떠나지 못"하는 협궤열차나 허옇게 바랜 판장들과 같은 구체적 표현들을 통해 암시된다. 그러나 이 시가 예전과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은 궁벽한 바닷가의 술집 작부에게서 형제 의식을 느끼는 점에서 찾아진다. 삶의 시궁창 속에 던져진 작부나 맵찬 바닷바람에 쓸려 꺼칠한 삶을 살아가는 타관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형제의식은 시인의 부끄러움을 더욱 증폭시키는 한편,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환기시키고 있다. 그것은 {농무} 시절부터 객지를 떠돌아다니면서 막연하게 느꼈던 시인으로서의 정체감과 소명감의 확인이랄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시인은 비로소 지식인이자 시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연히 인식하고 시작업의 방향을 설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그는 "네 편지에는 땀냄새가 배어 있다. / 종이에 깊이 박힌 볼펜 글씨에는 / 퀴퀴한 닭똥 냄새가 묻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네 아픔을 안다고 나는 말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는 시골 친구가 보낸 편지의 행간 속에서 "목쉰 새벽닭 울음소리"와 "돌아앉은 네 아내의 속울음"을 듣는다"([시골에서 온 편지]). 그것은 전적으로 시인이 급격하게 와해되는 농촌 공동체 사회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민중들의 순박성과 정직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9) 그는 여전히 '길' 위를 떠돌며 사람을 만나는데, 그들에게서 편지를 받기도 하고 거꾸로 편지를 붙이기도 한다. 아니, 어떤 점에서 {농무} 이후 지금까지 쓰여진 거의 모든 작품은 시인의 민중들에 대한 사랑으로 점철된 편지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경림은 그 편지에서 그들의 아픔과 울분, 고뇌와 좌절을 읽기도 하지만 그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건강한 생명력을 발견하여 그들을 위로하기도 한다. 민중들의 땀과 울음 속에서 진주처럼 빛나는 강인한 삶의 활력을 발견한 시인의 의식은 {농무}에서 개인적 울분과 좌절을 직설적으로 토로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다시 말해 {달 넘세} 이후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농무}부터 견지되어 온 삶의 세목에 대한 적확한 묘사와 함께 민중적 상상력에 따른 현실과 역사의 재해석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통적 서정시의 형식적 특성과 교묘하게 어우러짐으로써 민중시 계열의 경직성이나 편협성을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새벽에 일어나
비린내 역한 장바닥을 걸었다.
생선장수 아주머니한테
동태 두 마리 사 들고
목롯집에서 새벽 장꾼들과 어울려
뜨거운 해장국을 마셨다.

거기서 나는 보았구나
장바닥에 밴 끈끈한 삶을,
살을 맞비비며 사는
그 넉넉함을,
세상을 밀고 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생각느니보다 삶은
더 크고 넓은 것일까,
더 억세고 질긴 것일까.

네가 보낸 편지를
주머니 속으로 만지면서
손에 든 두 마리 동태가
떨어져나갈 때까지
숙아, 나는 또 걷고 걸었구나,
크고 밝은 새해의 아침해와
골목 어귀에서 마주칠 때까지
걷고 또 걸었구나.
-- [편지 - 시골에 있는 숙에게] 전문

20) 도시의 새벽은 시장에서부터 시작된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의 활기, 남대문 시장의 불야성, 노량진 수산시장의 비린내와 고함소리 등 전형적인 장터의 소란 속에서 도시의 새벽은 활기를 얻는 것이다. 이 시의 화자는 그런 새벽 수산 시장에서 동태 두 마리를 사들고 장꾼들과 어울려 뜨거운 해장국을 마시며 "살을 맞비비며 사는 / 그(삶의) 넉넉함"과 "세상을 밀고 가는 /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발견하고 감격스러워하는 것이다. 그러한 발견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과거 시에서는 생경한 관념성이 완벽히 제0거되지 않았던 데 비해 {달 넘세} 이후에는 내용과 형식의 완벽한 조화랄까 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한 조화야말로 시인의 오랜 표박(漂迫)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긍정과 포용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한때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모순에 대해 분노하고 소외 계층에 대한 연민으로 감정의 날(刃)을 세웠던 시인은 차츰 세상살이의 이치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크고 넓으며 억세고 질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인내와 관용의 철학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가 새벽 수산 시장에서 산 동태 두 마리를 잃어버리면서까지 '길'을 걷고 또 걷는 것도 언젠가는 분명히 "크고 밝은 새해의 아침해와 / 골목 어귀에서 마주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도 시인은 '길' 위를 서성댄다.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이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위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아이가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
두엄더미 수북한 쇠전마당을
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전꾼 되어
초저녁 하얀 달 보며 거닐려네
장국밥으로 깊은 허기 채우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네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삶은 때로 애닯기도 하리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길 잘못 든 나그네 되어 떠나려네
-- [고향길] 전문

21) 왜 시인은 고향으로 가면서 아무도 찾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일까. 이제까지 그는 고향이 아닌 곳에서도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났고 사람 만나는 것 자체를 즐겼던 시인이 아니었던가. 젊은 시절의 의기와 혈기만을 앞세워 직설적 불만을 토로했던 그가 이제 관용과 이해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지금, 고향길에서 아무도 찾지 않겠다고 말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지만 그가 찾지 않겠다는 것들이 "감석 깔린 장길"이나 "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아이가 /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 같은 고급스런 길이거나 안타까운 기억만 환기시키는 물목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시의 첫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자명해진다. 요컨대 시인은 더 이상 삶의 구질구질한 부면만을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겠다는 새로운 결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삶이 고통스럽고 애달픈 것은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적용되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인은 새벽 장터에서 또는 시골 나루에서, 벽지 술집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현실의 모순과 불합리에 더욱 좌절하기보다, 속악한 현실적 조건에서도 강인한 삶의 의지로 새벽을 여는 민중들의 놀라운 저력을 발견한 것이다. 따라서 {달 넘세}의 시적 성취를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민중들에게 그 어려운 삶을 함께 극복해내고 새로운 삶을 맞이할 넉넉한 희망을 일깨워주는 점"(김명수)이라고 본 김명수의 지적은 부분적으로만 옳다고 생각한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신경림의 시는 단지 민중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에서 벗어나 시인 자신에게도 세상을 보다 넓고 깊이 있게 해석할 것을 부단히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고백록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신경림의 시가 역사적 현실을 제재로 삼거나, 시적 청자가 지식인인 경우 시의 어조(語調, tone)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이를테면 '떠도는 원혼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씻김굿]에서 시인은 "되돌아왔네, 피멍든 눈 부릅뜨고 되돌아왔네, / 꺾인 목 잘린 팔다리 끌고 안고 / 하늘에 된서리 내리라 부드득 이빨 갈면서."라는 섬뜩한 표현도 마다지 않음으로써 원통한 넋을 위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증언하기도 하며, "우리가 쏘고 맞고 찌르고 찔리면서 / 죽던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해."([허재비굿을 위하여])라며 원혼들의 단말마를 공수하는 무당의 어법을 빌기도 한다. 또 민주화단체 송년의 밤에 낭송한 시에서 그는 "어깨로 밀고 나가리라 아우성으로 밀고 나가리라, / 이 두꺼운 바위 이 깊은 어둠을. / 우리들 손발을 묶은 쇠사슬을 끊으면서 / 이 땅 둘로 갈라놓은 휴전선을 깨치면서."([어깨로 밀고 나가리라 아우성으로 밀고 나가리라])와 같이 민중시의 상투적 구호를 그대로 차용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시가 일종의 행사시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 쇠된 목소리와 경직성에 대한 비판이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신경림 시에서 꾸준히 천착되고 실험되는 정신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떠도는 중음신을 위로하여 그들의 한을 씻고자 하는 것이라는 사실마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달 넘세}에 실린 시편들의 제목이 [씻김굿]·[열림굿 노래]·[허재비 굿을 위하여]·[물명주 열두 필] 등 원혼들의 넋을 위로하거나 화해를 위함이라는 사실이 그 점을 강력히 암시하고 있다.

(3) 귀향과 화해의 씻김굿

22) 신경림 시가 관심을 갖는 것이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 계층의 현실적 삶과 그 배경이 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점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다. 그는 부지런히 '길' 위를 편력하면서 삶의 기반을 상실하고 유리(遊離)하는 민중들의 삶에서 농촌 공동체 사회의 정신적·문화적 소멸을 포착한다. 그런 한편으로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되새기면서 구천에서 떠도는 억울한 혼령들을 위무하고, 아직도 그 잔재가 사라지지 않은 독재의 망령을 가차없이 질타한다. 그러나 신경림 시의 기본 정조는 민중과 조국에 대한 변함없는 연민과 사랑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줄곧 '길'을 떠돌면서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실상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의 거칠고 삭막한 감정을 위로하는 한편 그들의 억센 생명력에서 "세상을 밀고가는 /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발견하고 감동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신경림의 시가 점차 따뜻한 위로, 또는 화해의 길로 나아가게 된 것도 모두 이런 사정과 관련되는 것이다. 요컨대 신경림은 떠돌이 유랑악사에서 이제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뺏은 자와 빼앗은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해묵은 원한을 해소하는 씻김굿을 주재하는 시의 무당이 된 것이다. 오랜 세월 '길'을 떠돌며 서민들의 애환을 제것으로 육화하면서 무당의 기질을 체득하게 된 그는 전통적 의미의 강신무나 세습무와는 다르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는 '길 위의 무당' 또는 '습득무(習得巫)'라고나 할 수 있을 것이다. '길 위의 무당'으로서의 시인은 이제 꿈을 꾸기 시작한다.

산동네에 부는 바람에서는
멸치 국물 냄새가 난다
광산촌 외진 정거장 가까운 대폿집
손 없는 술청
연탄 난로 위에 끓어넘는
틀국수 냄새가 난다
산동네에 부는 바람에서는
기차바퀴 소리가 들린다
갯비린내 싣고 소금밭 지나는
주을이라 군자의 협궤차 소리가 들린다
황새기젓 이고 새벽장 보러 가는
아낙네들의 북도 사투리가 들린다
산동네에 부는 바람에서는
갈대밭이 보인다
암컷 수컷 어우러져 갈갬질하는
개개비가 보이고 물총새가 보인다
강가 깊드리에서 나래질하는
옛날의 내 동무들이 보인다
바람 부는 날이면 그래서
산동네 사람들은 꿈을 꾼다
버들고리에 체나 한 짐 덩그머니 지고
그 옛날의 무자리 되어 길떠나는 꿈을
가세가세 흥얼대며 길떠나는 꿈을
-- [바람 부는 날] 전문

23) {농무}의 [산1번지]와 유사한 상황을 그리고 있는 위 시편은, 그러나 그 정서나 분위기에 있어서 [산1번지]와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앞 장에서 살펴본 대로 [산1번지]가 근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품을 수 없는 도시빈민들이 동병상련의 연대감으로 결속되기보다 "서로 속이고 목을 조르고 마침내는 / 칼을 들고 피를 흘리"는 원한과 증오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면, [바람 부는 날]의 그것은 과거 고향에서의 즐거운 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회억과 미래에 대한 소박한 꿈이 나타나 있다. 산동네에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 그곳에서는 '멸치 국물 냄새'·'틀국수 냄새'가 나고 '기차바퀴 소리'가 들리고 있지만 그것이 산동네의 궁핍을 강조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러한 세목들은 산동네에 살면서도 농촌에서의 생활 습관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device)로 이해되는 것이다. 또 이 시에는 '무자리(화척)'·'깊드리(바닥이 깊은 논)'·'나래질(나래로 논밭을 반반하게 고르는 일)' 등 이제는 거의 잊혀진 고유어들이 적확한 자리에 쓰여 표현의 묘를 얻고 있기도 하다. 신경림이 등단 초기부터 무국적적 엑조티즘(exotism)을 거부하는 시를 써왔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최근에 와서 그의 시어와 가락은 더욱 전통적인 것과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위 시가 {농무}의 [산1번지]와 근본적으로 다른 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시 전체의 분위기가 과거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과 미래에 대한 꿈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한가지 지적할 것은 그들이 꾸는 꿈이 하필이면 옛날 '무자리〔禾尺〕'처럼 떠돌아 다니는 것이라는 점이다. 잘 아는 바대로 '무자리'란 후삼국이나 고려시대에는 떠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거나 고리를 결어 파는 사람을 지칭했으나, 뒷날 광대나 백정·기생 등 천역(賤役)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참고하면 이 시어의 사용이 적절치 않음을 알게 된다. 위 시에서 말하는 '옛날'이 구체적으로 어느 시대를 지칭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그것이 '무자리'가 천역화된 시대 이후라면 이 시에 담겨져 있는 민중에 대한 폄하의식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4) 기행시집 {길}에서도 신경림은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그 '길'에서 시인은 여전히 세상 살이의 참된 이치를 깨우치기도 하지만, "잘난 사람들끼리 오가면서 / 나라 갈라진 것 한데 잇는다는 구실로 / 돈벌리 궁리를 하"([금강산])는 천박한 세태를 비판하기도 하고, 장자의 나비가 되어 북방한계선을 아무 장애없이 넘나드는 행복한 꿈을 꾸기도 한다([나비의 꿈]). 그러나 {길}에서 보이는 가장 커다란 변화는 신경림의 편력이 외부적 현상의 관찰에서 벗어나 서서히 정신적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일 터이다. {쓰러진 자의 꿈}은 신경림의 기행(紀行)과 편력(遍歷)이 자신의 내부로 향하고 있다는 점을 잘 드러내준다.

버릴 것은 버리고 줄일 것은 줄이자
아까울 것 없다 자를 것은 자르자
어둡고 먼 길을 떠나야 하니까
다가오는 어둠 끝내 밝지 않으리라
생쥐들 설치는 것쯤 거들떠도 볼 것 없다
불어닥칠 눈보라와 비바람 이겨내자면
겉에 걸친 것 붙은 것 몽땅 떨쳐버려야지
간편한 맨몸으로만 꺾이지도 지치지도 않고
먼 길 끝까지 갈 수 있지 않겠느냐
다 버리고 가지와 몸통만이 남거든
그래 나서자 젊은 나무들아
오직 맨몸으로 단단한 맨몸으로
외롭고 험한 밤길을 가기 위해서
-- [먼 길 - 가을 숲에서] 전문

25) 신경림의 '길'은 아직 어두운 <밤 길>이거나 언제 다다를지 알 수 없는 <먼 길>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어둡고 먼 길에 대한 불만이 사라지고 그 '길'을 가기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마음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현실에 굴복하자는 패배주의가 아니라 현실을 적확히 이해하고 그에 대응해야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성숙한 의식의 결과이다. 보다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몸에 걸친 것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으며 "생쥐들 설치는 것쯤 거들떠도 볼 것 없다." 그런 것들은 본질과는 전혀 무관한 일시적인 것이거나 기회주의자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토록 먼 길을 가는데 앞장서야 할 사람들은 시인처럼 나이 든 세대가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어야 한다. 그들은 가진 것 없는 맨몸들이지만 곧은 정신과 의지로 단련되어 있어서 금강처럼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라고 "어둠이 오는 것이 왜 두렵지 않으랴"([나무를 위하여})마는, "밝는 날 어깨와 가슴에 /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달게 되리라는" 자연의 섭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둔 밤의 먼 길을 두려움없이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다리(橋)가 되어 사람들이 강을 건너게 도와주는 일이다.

다리가 되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스스로 다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내 등을 타고 어깨를 밟고
강을 건너가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늘 서럽다
왜 스스로는 강을 건너지 못하고
남만 건네주는 것일까
깨고 나면 나는 더 억울해지지만

이윽고 꿈에서나마 선선히
다리가 되어주지 못한 일이 서글퍼진다
-- [다리] 전문

26) 이 시는 언뜻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을 연상시킬 만큼 근본 사상에서 닮아 있다. 그러나 만해의 시에서 화자는 '나룻배'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직접 치환되지만 이 시의 화자는 다만 "다리가 되는 꿈을 꾸는 날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것이 일상적·지속적인 사건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룻배'와 '다리'는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도구(vehicle)라는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도 보이지 않는다. <사벌등안(捨筏登岸)>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불교에서 '나룻배(뗏목 : 筏)'는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는 데 필요한 수단이지만, 정작 깨달음의 단계에 이르면 버려야 할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뗏목'에 대한 해석은 다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나, 그것을 '언어'로 해석하는 관점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언어'는 궁극적 진리에 도달하는 수단인 동시에 그것을 일반 대중에게 전파하는 수단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경림의 [다리]에서 '다리'를 언어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비유적 의미에서의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매개하는 수단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시의 화자가 "다리가 되는 꿈"을 꾼다는 것은 세속적 삶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이 올바른 깨달음에 도달하도록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의지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오랜동안 민중들의 삶의 현장에서 함께 웃고 분노했던 시인으로서 의당 가질 수 있는 민중애적 희생정신이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자신이 매개 역할만 하는 것에 불만을 갖는다. 그것은 민중의 선도가 되어 그들을 모두 피안의 세계, 즉 대자적 민중으로 의식을 고양시키는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성의 의미로 이해된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시인은 그와 같은 소영웅주의를 부끄러워 한다. 그런 소영웅주의야말로 민중과 지식인 사이의 의식의 단절을 초래할 수도 있는 위해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제까지 얻고자 노력했고 또 얻었던 모든 것을 버리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버리고자 하는 시인의 의식은 계곡물처럼 투명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산을 오르며 얻은 온갖 것들을
하나하나 버리기 시작했다
평생에 걸려 모은 모든 것들을
머리와 몸에서 훌훌 털어버리기 시작했다
쌓은 것은 헐고 판 것은 메웠다

산을 다 내려와
몸도 마음도 텅 비는 날 그날이
어쩌랴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된들
사람살이의 겉과 속을
속속들이 알게 될 그날이
-- [下山] 전문

27) 산을 오르는 행위의 무상성(無償性)을 강조하는 말 가운데 "거기 산이 있으므로 오른다."라는 잘 알려진 경구가 있지만, 그 말 속에도 분명한 목적성이 개입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모든 행위는 본질적으로 무언가를 얻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라 보아도 큰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 이순(耳順)의 나이에 접어든 시인은 이제 산을 오르며 얻은 것들을 모두 버리기 시작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것도 별로 쓸 데 없어 보이는 일부만 버리는 게 아니라 "평생에 걸려 모은 모든 것"을 마치 몸에 붙은 지푸라기를 털어내듯 "훌훌 털어버리기 시작"했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신경림의 40년 시력(詩歷)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편력하며 관찰한 민중들의 삶의 기록이며, 그러한 관찰과 기록을 통해 그는 70년대 이후 한국 민족문학 계열에서 독특한 자리를 점유할 수 있었다. {농무}부터 {길}까지의 시는 그가 이십대 실의와 좌절의 시절부터 사람살이의 '길'이 밖으로만 난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도 사통팔달로 뚫려 있다는 진리를 깨달을 때까지 부단히 돌아다닌 편력자의 발자취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발자취 속에는 시인과 민중의 울분·한·설움 등이 뒤섞여 독특한 감동과 비애를 자아낸다. 시인은 아직도 계속 '길'을 걷고 산을 오르고 있지만, 현재의 편력은 이십대 이후 지속되어 온 편력과는 전혀 그 성격을 달리한다. 예전의 여행이 세상에 대한 울분과 저항으로 특징지워질 수 있다면, 오늘날의 등산이나 기행은 현실보다는 내적 삶에 성실하고자 하는 시인의 자각적 통찰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거기서 살아가는 이름 없는 민중들의 삶을 주목하지만 보다 관심을 갖는 것은 그들의 외적 행동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세상살이의 지혜 같은 것이다.

28) 해방 이후 전개된 우리 역사는 독재정권의 민중 계층에 대한 억압과 소외의 연속이었다고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전개된 경제개발정책에서 민중 계층의 이익은 항상 유보되었고, 그 결과 그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받은 계층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신경림이 '길'을 떠돌며 방황하고 시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깨닫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에서 비롯된다. 그는 유신독재 치하에서 민중문학의 건설에 누구보다 헌신적이었으며, 전통적 서정시 형식에 서사성을 도입하여 민중들의 애환과 울분을 감동적으로 형상화한, 한국현대시사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신경림의 초기시가 기득권 세력에 대한 원한과 증오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그 후에 보여준 서서한 변모는 그의 대가(大家)로서의 역량을 증거해준다.
다시 말해 신경림은 외적 현실에 대한 자세한 관찰자의 역할에 충실하는 한편, 민중들의 건강한 생명력이야말로 역사를 추동하는 원동력으로 이해하면서 세상살이의 참뜻을 찾고자 한다. 신경림 시에서 '길' 모티프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것을 단순히 그의 방랑벽으로 이해하는 것이 잘못된 까닭도 그러한 연유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는 '길'을 걸으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역사를 배운다. 그가 민중들의 실제 삶을 통해 터득한 역사인식은, 진정한 역사 발전은 민중에 의해 이룩되어야 한다는 민중적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신경림은 전투적·선동적 이데올로기스트와는 다르다. 그는 근본적으로 시인이며 그것도 아름다운 서정시를 즐겨 쓰는 시인일 뿐 문학을 정치적 이념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투사는 못된다. 오히려 신경림은 문학을 통해 역사와 삶의 진실을 배우려는 성실한 학생이며, 외적 현실의 질곡을 제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내적 성찰을 꾀하는 진지한 수행자로 보아야 한다.
40여년의 문학적 기행을 통해 비로소 '해한'의 지평을 탐색하기 시작한 신경림의 시적 편력은 민족문학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준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의 시가 도달한 화해의 바다는 정체불명의 정신주의를 지향하는 일부 시인들의 관념적 태도와 질적으로 다른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우리는 신경림을 따라 '길' 위를 떠돌며 농촌공동체 사회의 붕괴에 따른 농민들의 애환과 도시로 유입된 빈민들의 처참한 삶의 양상, 그리고 역사적 격변기에 희생된 무수한 민중들의 원한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시인이 그들 모두를 따뜻하게 감싸안고 원혼을 천도하는 과정을 적지않은 감동으로 지켜 보기도 했다. 이제 시인은 '길' 위에서 벗어나 '길' 안의 자아를 성찰하는 편력의 과정을 선보이고 있다. 나아가, 민중적 상상력에 근거를 자아성찰의 편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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